시험은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중학교 때 시험과 평가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면 나 자체로 의미있는 그런 세상이 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인생은 시험의 연속이었다.

초등학교 때 받아쓰기를 했는데
선생님이 1번부터 10번까지 단어를 불러주시고 그 말을 공책에 썼다.
그 때는 열심히 했는지 종종 상을 받았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상으로 종이조각을 받았고 여러 장 모으면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종이조각은 갈색이었는데 공책 첫페이지에 끼워 모았던 특별하고 좋았던 기억이 있다.

그 때 시험은 내게 조금만 잘하면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에는 여러 과목 시험을 봤는데
시험은 문제를 풀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잘 푸는 사람은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못 푸는 사람은 공부에 부족한 사람이었다.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 인기도 있었다. 친구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서열로 받아들여졌다.
수업시간 외에 시험공부를 하지는 않았는데 점수는 괜찮았던 것 같다.

시험 스트레스는 적었던 것 같다.
그나마 초등학교 때까지는 선생님들이 시험 스트레스를 덜 줬던 것 같다.

중학교 때부터 시험은 아주 중요한 것이 되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있었고 모의고사도 있었다.
그 점수는 나를 평가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되었다. 
선생님은 그 점수로 혼을 내기도 하고 잘 해주기도 했다. 
점수가 다르면 대우가 달려졌다.
시험을 잘 보는 친구는 공부 잘 하는 아이가 되어 존중받고 못하는 아이는 체벌을 받았다.

이 때부터 시험을 피하고 싶었다. 매번 다가오는 시험이 고통의 연속이었다.
재미있지도 않는 것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평가받는 시간들이었다.

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학교 때 시험은 사회예비생으로서 잘하고 있는지 가늠해볼 수 있었다.
사회 나가기전에 시험을 잘 봐야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는 현실적 의미로 다가왔다.
좋은 점수를 얻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사회에 나와서도 시험은 계속 되었다.
조직에 속해있으면 하기 싫은 것은 계속해야하고
하고 싶었던 것도 재미없게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시험은 나를 점검해볼 수 있는 도구이지만,
실상 나를 평가하는 점수로 내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시험을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런 세상은 지금 없다.
모두가 즐겁게 시험을 볼 수 있는 세상 또한 없다.

세상에 등을 질 것인지
아니면 시험은 봐야하는데 그것에서 재미를 찾아 잘 해보던지 선택해야 한다.

시험은 싫지만 나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여느 아이처럼 한참 장난끼 많을적 슈퍼맨을 따라하듯 
시도한 행동이 꽤 큰 상처를 만들었다.

병원 생활을 오래하게 되었는데
그 때 치료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이 인생에 큰 가중치가 되었다.

행여나 이 행동이 병원을 가게 만드는 행동일까 생각하게되고
어쩌다 다치게 되었을 때는 병원에 가야하는 것은 아닐까 고민하게 만들었다.

작은 상처에도 극대화된 우울감을 동반하고
행여 병원가게 되면 오래있어야 하지는 않을까 얼마나 통원해야하는지 두려웠다.

어릴 때 경험이 흉터처럼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다.


오래전의 병원 바닥은 무채색 대리석에 의자와 진료용 시트는 황토색이었다.
수술대는 차가웠고 옆에 걸려있는 링거에서 떨어지는 수액 한방울은 걱정과 두려움을 더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수액에 더해진 마취액에 잠이 들었다. 
어린 마음에 아무말없이 링거에 바늘을 꼽던 마취 선생님이 차갑게 느껴졌다.

깨어났을 때 통증은 없었지만 주위 사람의 걱정에 마음이 아팠다.
누구의 잘못인지는 판단할 수 없지만 정상적인 경과가 아니라서 한번 더 큰 고통을 겪었다.

그런 병원 생활은 참 길게 느껴졌다. 그 와중에 어린나이지만 병원비 걱정도 있었다.
오래 병원에 있으면 돈이 많이 들거야. 빨리 나아서 나가야지.

차갑고 아팠던 병원생활에서도 천사같은 선생님이 생각난다.
병원 한편의 문에는 임상병리과 선생님이 있었는데 항상 따스하게 맞아주었다.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를 대해주던 마음씀씀이에 내 편처럼 의지하고 싶었다.
어릴적이지만 고마웠다.

그 이후로도 병원을 가게되었지만
병원은 항상 나에게 무서운 존재였다.


성인이 되어서도 아프면 바로 병원에 가야지하면서도 그게 쉽지 않다.
어릴적 판단이 남아있는지 아직 돈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만 무서워서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TV에 나오는 병원에 가기 싫어하는 노인분들도 같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 병원 시설은 많이 나아졌다.
그래도 병원은 아파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고 치료를 받는 곳이다.
대부분 훌륭하지만 가끔 안 좋은 이야기도 보고 듣는다.
나처럼 병원의 기억은 평생 그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 잡을지도 모른다.
모두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하신 분으로 믿고 싶다.



우산을 쓰다.

우산은 나 자신의 결핍을 보게 만드는 물건이었다.
중학교 때 갑자기 오후에 비가 운동장에 쏟아진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그칠 기세없이 계속 내린다.

6교시 수업을 마쳐서 입구로 가서 서있으면
어떻게 가야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뛰어갈까. 아니면 머리에 비를 안맞게 가방으로 가리고 갈까.

평소에도 멋있어 보이는 친구들은 꼭 엄마나 가족이 와서 데려간다.
그 외 친구들은 비를 맞거나 다른 친구 우산에 끼어 가든지 한다.

친구에 기대고 싶지도 않고
자존심은 있어서 스스로 하고 싶었다.

그냥 비를 맞으며 머리에 가방을 올리고 집으로 향한다.
웅덩이를 피해가며 피를 덜 맞을 요령으로 뛰어간다.

혹시나 가족이 오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다.
어느 때였는지 집에 다가 학교에 절대 오지말라고 당차게 말한 적도 있는 것 같다.

비올 때 우산을 보면 내 인생을 직면하는 것 같아 옅게 깔린 물안개처럼 마음이 살짝 무거워진다.


요즘 길어지는 장마에 우산을 필수품처럼 가지고 다녀야하는 한다.
비를 안맡게 해주는 건 좋지만 이외는 다 별로인 것 같다. 

귀찮다.
접었다 폈다. 왜 이래야하나 싶기도 하고 거추장스럽다.

조그마한 것이 무겁기도 하고 행여나 비가 옆으로 불어치면 아래는 그냥 다 젖는다.
집에 들어와서는 우산을 잘 말려야 다음에 쓸 때 냄새도 안나고 녹이 슬지 않는다.


차라리 그냥 비를 맞을 때는 기분이 좋다.
맞아도 별거 아닌 것 같고, 괜히 별거 아닌 것을 무서워서 피하려 한 것 같은 느낌이다.

머리에 콕콕 떨어지는 비는 점점 머리를 적셔온다.
눈 앞으로 스치는 듯한 비는 코를 따라 흐르고 
머리에서 내려오는 비는 눈썹을 지나 아래로 떨어진다.
광대에 내린 비는 튕겨져 나가고,
입술을 퉁퉁 치는 비는 가끔 입에 들어온다.

비가 조금씩 옷을 적셔온다.
몸에 옷이 붙는 느낌이 나쁘지않다. 땀과 먼지로 더러워졌던 옷이 세탁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다만 신발에 물이 차올라 신발이 질퍽 거리는 느낌은 별로다.
발이 불기도 하지만 발을 내딛어 땅에 닿을 때 신발안에서 물이 움직이는 듯한 그 촉감이 젖은 양말의 이미지처럼 깨끗하지 않다.
신발을 벗으면 냄새가 날 것 같기도 하다.


때로는 우산 쓰는게 즐거울 때도 있었다.

연애할 때 좋아했던 친구와 같은 우산을 쓸때면 그 우산이 예뻐보였다.
한쪽 어깨에 비를 맞았지만 우산으로 하나가 되는 느낌이 좋았다.
우산의 한 기둥 아래 같이 비를 피하면서 나아간다. 
조금은 가까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같이 걸을 때마다 행여 친구가 비를 맞지는 않을까 신경쓰게 되고 
조금은 덜 맞지 않을까하는 바램으로 발을 맞춰 걸어보기도 한다.

다시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없을 것 같은 아련한 추억이다.


생각해보니 우산은 나와 함께하면서 꽤 많은 추억을 쌓았다.

검은머리 파 뿌리 되도록 함께할까.
아휴~







잠을 자는 아기를 바라보면 아쉽고 황홀하다.

깨어있는 시간동안 충분히 좋은 기억을 함께했는지 생각해보면 아쉽고
하루를 보내고 곤히 자고 있는 모습은 생명에 감사하고
가족으로 묶인 울타리 안에서 생명체로서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에 황홀하다.


깨어있는 시간 중 육아에 화가날 때가 있다.

아가니까 투정도 부릴 수 있고 
말도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해서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가능한 범위내에서 들어주고 잘 보살피는 것이 적절한 것은 물론이다.

한참 배가 고플 것 같은 시간에 좋아할 것 같은 음식을 앞에 두었다.

적절한 재료로 조리가 되었는지
뜨겁지는 않은지
탈이 나지 않은지 검증한 음식을 마련해서 정성스럽게 한 술 떠서 가져간다.

잘 먹을거라는 기대로 가져갔는데 다른 것을 가리킨다.
파스텔 빛으로 덮인 신선한 회지만 먹지도 못하는 것을 달라고 떼를 쓴다.

“저거는 엄마꺼야. 아가가 먹으면 아야해.”

먹으면 안되는 것을 멀찍이 옮겨놓고 다시 한 술을 가져가지만 싫단다.

“아가가 먹을 수 있는 것은 여기있어.
아가가 직접 포크로 먹어볼래?”

한 손에 포크를 쥐어주면 만족스럽게 받아든다.
그리고는 일어서서 반대편 테이블을 보고 의자에 기어올라 가려고 한다.

“여기 올라가면 아야해.
포크까지 가지고 있어서 위험해.
앉아서 먹어야지.”

잘 타일러 보지만 막무가내다.
지금 배가 고플시간인데 먹지 않으면 배고플텐데
음식이 나왔을 때 먹지 않으면 또 준비할 수 없는데.

이런 생각이 나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면 기분이 상한다.
부모로서 앞으로 선택할 수 있는게 많지 않다. 
이제부터는 쫓아다니면서 먹일 수 밖에 없다.

상대는 생각이 없는 것을 하려면 여러모로 에너지 소모가 크다.
밥 한번 먹이는데 하루의 에너지를 모두 썼다.

그리고나면 한참 씨름 후에 쉬어야하는데 쉴 틈이 없다.
먹은 것을 정리하면 놀아야한다.

정작 해야겠다고 생각한 일은 못하고
끌려다니면서 에너지를 다쓴터라 허탈함에 마음을 챙기기가 쉽지 않다.
나를 계속 비우는데 나를 채우는 시간이 없다.

하루의 한끼 식사 시간은 그렇게 거창하게 지나간다.
오늘 꼭 해야했던 분량의 일은 풀기 어려운 숙제로 남고 
시간은 얼마남지 않아 안절부절이라 누구라도 원망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육아는 어렵다. 이렇게  아가가 잠드는 시간을 기다린다.



나이 30은 스스로 정의한 한계를 짚어가는 시간이었다.

늦은 시간까지 야근해도 다음날 출근할 힘을 낼 수 있었다.
늦게까지 회식해도 다음날 일찍 출근해도 견딜 수 있었다.

그 시절 많은 시간들이 있었다.
일을 다하지 못해서 전전긍긍하던 시간,
새벽에 회사를 가야했던 시간,
주말이면 자기계발을 위한 자격증을 공부하던 시간,
스트레스에 점점 예민해졌던 모습이 생각난다.

하지만 기억에 대해 떠오르는 감정이 없다. 그 시간이 행복하지 않았다.
내 젊음을 오롯이 열정적으로 소비한 것 같아 시간이 아깝다.

감정에 풍부한 경험을 더해서 많은 기억을 하고 있었으면 더 행복하지 않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은 그 때의 열정을 못 찾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절 많이 들었던 얘기 중 연애를 많이 해보라고 하지만 적당한 연애가 나은 것 같다.

연애를 많이하면 마음을 다듬는 시간이 될 수 있지만
더 많은 욕심을 낳기도 한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야지. 더 괜찮은 사람을 만나야지.
상처받지 않을 사람을 만났으면.

연애를 통해 나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했던 시간동안 나는 소외되었던 것 같아 아쉽다.

나를 소비하기보다는 그 때의 외로움과 고독을 즐기며
나와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가지는 것은 어땠을까.


나이 40은 내 나이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이 정도는 거뜬하게 했었는데 지금은 힘이 왜 모지랄까 생각한다.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남아있는 기력으로 알아채지만 나이를 부정하다 결국 이해하려고 하는 시간이었다.

거울 속 얼굴의 피부는 아직 예전과 그대로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10년전 또래와 비교하면 다른 것을 알게 되었다.

팔자주름도 예전과 같아 보이지만
그 깊이를 더해졌고 굵은 선이 도드라지게 보인다.

나이 40은 아쉬움으로 나를 달래며 적당한 타협과 책임감으로 살아왔던 시간이었다.
때로는 포기하기도 하고 지쳐 잠들기도 했다.

내가 하고싶은 것을 어렴풋이 알 것 같고
내가 하기싫은 것과 귀찮아하는 것을 알았다.

나의 한계를 그려볼 수 있었고 
남아있는 시간을 소중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인생은 이렇게 흘러간다.
아쉬움이 남고 어떻게 사는 인생이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내가 중심이 되고 현재 가슴뛰는 삶은 살아야한다는 것은 알겠다.
오롯이 그 감정을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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