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을 쓰다.
우산은 나 자신의 결핍을 보게 만드는 물건이었다.
중학교 때 갑자기 오후에 비가 운동장에 쏟아진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그칠 기세없이 계속 내린다.
6교시 수업을 마쳐서 입구로 가서 서있으면
어떻게 가야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뛰어갈까. 아니면 머리에 비를 안맞게 가방으로 가리고 갈까.
평소에도 멋있어 보이는 친구들은 꼭 엄마나 가족이 와서 데려간다.
그 외 친구들은 비를 맞거나 다른 친구 우산에 끼어 가든지 한다.
친구에 기대고 싶지도 않고
자존심은 있어서 스스로 하고 싶었다.
그냥 비를 맞으며 머리에 가방을 올리고 집으로 향한다.
웅덩이를 피해가며 피를 덜 맞을 요령으로 뛰어간다.
혹시나 가족이 오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다.
어느 때였는지 집에 다가 학교에 절대 오지말라고 당차게 말한 적도 있는 것 같다.
비올 때 우산을 보면 내 인생을 직면하는 것 같아 옅게 깔린 물안개처럼 마음이 살짝 무거워진다.
요즘 길어지는 장마에 우산을 필수품처럼 가지고 다녀야하는 한다.
비를 안맡게 해주는 건 좋지만 이외는 다 별로인 것 같다.
귀찮다.
접었다 폈다. 왜 이래야하나 싶기도 하고 거추장스럽다.
조그마한 것이 무겁기도 하고 행여나 비가 옆으로 불어치면 아래는 그냥 다 젖는다.
집에 들어와서는 우산을 잘 말려야 다음에 쓸 때 냄새도 안나고 녹이 슬지 않는다.
차라리 그냥 비를 맞을 때는 기분이 좋다.
맞아도 별거 아닌 것 같고, 괜히 별거 아닌 것을 무서워서 피하려 한 것 같은 느낌이다.
머리에 콕콕 떨어지는 비는 점점 머리를 적셔온다.
눈 앞으로 스치는 듯한 비는 코를 따라 흐르고
머리에서 내려오는 비는 눈썹을 지나 아래로 떨어진다.
광대에 내린 비는 튕겨져 나가고,
입술을 퉁퉁 치는 비는 가끔 입에 들어온다.
비가 조금씩 옷을 적셔온다.
몸에 옷이 붙는 느낌이 나쁘지않다. 땀과 먼지로 더러워졌던 옷이 세탁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다만 신발에 물이 차올라 신발이 질퍽 거리는 느낌은 별로다.
발이 불기도 하지만 발을 내딛어 땅에 닿을 때 신발안에서 물이 움직이는 듯한 그 촉감이 젖은 양말의 이미지처럼 깨끗하지 않다.
신발을 벗으면 냄새가 날 것 같기도 하다.
때로는 우산 쓰는게 즐거울 때도 있었다.
연애할 때 좋아했던 친구와 같은 우산을 쓸때면 그 우산이 예뻐보였다.
한쪽 어깨에 비를 맞았지만 우산으로 하나가 되는 느낌이 좋았다.
우산의 한 기둥 아래 같이 비를 피하면서 나아간다.
조금은 가까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같이 걸을 때마다 행여 친구가 비를 맞지는 않을까 신경쓰게 되고
조금은 덜 맞지 않을까하는 바램으로 발을 맞춰 걸어보기도 한다.
다시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없을 것 같은 아련한 추억이다.
생각해보니 우산은 나와 함께하면서 꽤 많은 추억을 쌓았다.
검은머리 파 뿌리 되도록 함께할까.
아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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